공승연. [572412] · MS 2015 · 쪽지

2015-11-07 23:36:03
조회수 18,329

수능을 망쳤을 때의 파급효과

게시글 주소: https://io.orbi.kr/0006754103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내 생의 첫 수능을 마치고 채점을 끝냈을 땐 나도 모르게 슬픈 감정하나없이 울고있었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되는 놈이었나...?"
라고 되뇌이며 가채점표를 찢는다...
나름 잘봤다고 생각하면서 채점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만에 쩔어있었던 나에게 비수가 꽂힌다.
정말이지 더욱 가슴아픈건 이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단지 나의 기대에 못미쳐 찢겨져 버린 초라한 수능 성적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죄책감, 수능을 못봤다는 것에 대한 파급효과를 잘 모르고 있던지라 태평하게 몇 주를 보냈다.

수시논술은 모두 떨어지고 정시원서접수가 시작되었다. 배치표를 떠들러본다.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은 저 상공위로 사라져버렸고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대학마저 현역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는듯이 배치표는 나에게 너무큰 장벽같이 느껴졌다...
"현역빼고는 다 괴물들 밖에 없나...?" 라고 무심한듯 되뇌이며 아무 생각없이 상향지원을 했다.

떨어졌다. '아직 괜찮아 안정지원 나군에 하나해놨어'
라고 위로하며 합격자발표를 기다렸다.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에 물수능의 여파로 하향지원을 한 지원자들이 몰리면서 예비번호 20번대를 받았다.
1차추합결과... 불합.
2차추합결과... 불합.
...
'맘에 안 드는 대학을 가더라도 반수하면 되지뭐!'
라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원서영역에서 불합격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얻었다.

아직 이 비참한 결과는 부모님께서는 모르신다.
안정지원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무조건 붙는 것으로 알고계셨고 나또한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2월 27일이었나.. 정확히는 기억나지않지만 마지막추가합격날 부모님이 여쭤보실까 두려워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을 닫고 이불속에 들어가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지난 수험생활과 정말 무심하게 치렀던 원서영역에 대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란 놈은 이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 여리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울었다.
다음날 점심,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께서 외식을 하자고 하신다. 내 방에서 공간을 차지하고있는 것 조차 부모님께 죄송한데 부모님은 힘들어 보이는 아들하나를 위해서 기분전환을 시도해주신다. 눈물을 살짝살짝 들키지 않게 훔치며 식당에 도착했다.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하지... 아빠는 재수는 절대 안된다고 하셨는데...

마음을 다잡고 부모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저 떨어졌어요..."
나는 그때 부모님의 표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속을 까맣게 타들어가나 아들의 힘겨움을 이해해주시는 그런... 복잡미묘한 표정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말을 꺼내고 차를 타고 집에 오는동안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정말 죄송하다고 ... 아들놈이 부모님 뵐 면목이없다고...
또 한편으로는 왜 수능이라는 ㅈ같은 제도가 날이렇게까지 힘들게하는가에 대해 분을 금치 못했다.
이런 나의 어리석고 누구보다 자만했던 나의 현역생활은 끝이 났다.

부모님께서 눈물흘리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아프고 그 장면을 되새기면서 힘든 재수생활을 해나갔다. 얼마전 사설모의고사에서는 만점도 받았다. 하지만 자만이 얼마나 큰 독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지난 겨울은 나를 다시 달릴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덧 시간은 많이 흘렀고 벌써 대수능이 4일전으로 다가왔다.
승리자에게는 포근한 겨울이 오지만, 패배자에게, 정확히는 수능이라는 제도아래의 패배자에게는 시리도록 가슴아프고 잊지못할 추운 겨울이 찾아오는 것 같다.

현역분들 그리고 재수 N수생여러분들
여기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2016수능 잘보실겁니다!
ㅎㅎ 갑자기 쓰고싶어진 글이라 별로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ㅠㅠ 이해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점은 제가 받을거에요. 한두개씩만틀려주세요^~^)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