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an.T(이서현) [253967] · MS 2008 · 쪽지

2016-06-17 08:44:14
조회수 25,308

[Shean][뻘글] 역시 난, 머리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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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핏 3일 째.
(크로스핏이란 영화 300 배우들이, 비가 닌자언쌔신을 찍으면서 몸을 만들기 위해 했던 운동으로 유산소와 무산소를 결합시켜 단체로 빡세게 굴리는 운동을 말한다.)

처음으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라는 걸 하였다.

난 고3 때 체대입시를 준비하였고 그 후로 꾸준히 운동을 해온 편이지만, 저런 기구 운동은 할 줄을 모른다.

푸시업, 싯업, 풀업 같은 맨몸 운동이 더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건강하고 이쁜 몸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트레이너님이 하자고 하면 해야지.

그런데 그거 아나?

공부도 운동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

공부로 치면 어떤 수학 문제 풀이를,
운동으로 치면 어떤 일련의 동작을 보여주었을 때,
한 번 보고 금방 금방 잘 따라하는 애들이 있다.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처음하는 종류의 것이면 처음에 진짜 어색해하고, 잘 못알아듣는다. 거의 한 집단에서 뒤쳐지는 하위권에 있는 수준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동작을 초심자 분들에게 전수를 한 코치님은 당연 다 금방 하실 줄 아셨나 보다. 갯수를 부여하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가 오시더니 넘나 어색해 하며 스쿼트 몇 개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셨다.

"서현씨 몇 개 할 차례예요?"
"21개...요"
"네?"
"21개요"
"아 아직 21개 세트도 못 끝내셨다고요...? 회원님, 제가 성격이 좀 더러운 사람이에요. 이렇게 집중 못하실 거면 새벽반 오지 마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아 네 죄송합니다. 이런 기구 운동이 처음이라..."

I don't know why, but that worked as a sort of a reminder.

Reminiscent of the past.

수능 공부라는 걸 처음했을 때가 떠올랐다.

국어수학은 3,4 정도, 영어는 5등급던 그 시절.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고 학교 수업을 집중하면서 듣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이해도가 낮았다. 반에서 평균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 정도의 이해도거나, 더 낮은 편이었다. 항상 단박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고3 때 수능 전교 1등을 했고,
어떻게 재수 때,
111 11121을 찍었냐고?

단박에 이해가 안 되니까,
끝나고 "계속 생각했다"

단박에 알아먹지 못한 것에 대한 오기, 독기, 의지, 쪽팔림 대략 이런 것들이 작용했던 것 같다. 항상 단박에 알아먹지 못하니, 끝나고 오랫동안 생각을 해야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철면피'를 깔고 이 소심한 A형인 내가, 선생님을 붙잡고 해결될 때까지 물어보았다.

그래, 바로 저 "생각 지속성(thinking sustainability)"이 내가 하나의 개념을 원리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더 나아가 심화적인 부분도 탐구할 수 있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생각할 수 있게 한 이유이다. (저 용어는 지금 내가 만든 것이다. 학술적으로 있는 지 모르겠다)

하루종일 자신이 지금 성취해야하고, 집중해야하는 것에 대해 생각의 끈(thinking thread)을 놓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낮은 선천적 능력에 비해 공부도 운동도 나름 잘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고3 때 체대입시도 마찬가지였다.

영리해야 금방할 수 있는 종목 중에 하나가,
'배면뛰기' 이다.

쭉쭉 달려가서, 마지막 쓰리스텝을 밟고, 몸을 비틀면서 한 발로 점프, 각도는 45도, 점프한 뒤 정점까지는 직선 자세 유지, 정점 직전부터 배를 위로 내밀고 허리는 안으로 넣으며 다리에는 힘을 빼고, 최대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

듣기만 해도 참 어려워보이지 않는가.

저 일련의 과정을 우선 머리로 다 이해하고,
영리하게 몸과 연결시켜야 한다.

처음에는 이건 뭐... 코미디였다.
115cm만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고 자세는 너무나 뻣뻣하였다.

두 달, 머릿속에 항상 그 이쁜 포물선을 그렸다.

계속해서 높이뛰기 바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마침내 서울대 체교 2차 실기 날,

내가 지금까지 그린 포물선 중에
'가장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145cm를 넘으면서.
(만점이 155cm. 극소수만 통과)

Coming back to now.

크로스핏 딱 3일을 한 일주일이 끝났다.

난 저걸 잘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여름에 해변에 가서 멋지게 놀고 싶다.

그러니, 내가 못한 동작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름이 마무리될 때 쯤,

새벽반에서 가장 멋지게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해내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Shooting for the future.

가까운 미래에 배울 중국어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또 혼자 제대로 못 알아먹겠지.

그렇지만 괜찮다.

영어 5등급에서,
22살에 처음으로 영어 말하기와 글쓰기를 시작하여 하나 하나 너무나 어색했던 나에서,
이제는 어디가서 영어로 절대 안 꿀린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10 여 년 간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 놓은 이 성공 전례가,
이제는 미래에 내가 처음하는 무언가를 좀 더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게 하는, 못하는 걸 쪽팔려하지 않는 힘,을 준다.


역시 난, 머리 말고 다른 걸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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