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쌤 [492790] · MS 2014 · 쪽지

2015-12-05 09:05:51
조회수 10,287

[원천쌤] 집안 형편 등으로 재수를 결심하면서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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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계형 국어 강사 원천쌤입니다.

오늘 원래 계획에도 없는 글을 짧게 한편 쓸까 합니다.

오르비 게시판을 보니 재수를 고민하게 된 친구들이 경제적 부담 등때문에 고민하는 글들이 꽤 되더군요.

참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2년 전에 재수 종합반에서 가르친 학생이 한명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의 이유가 격려나 도움이 될까 해서요.

(물론 이 친구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 친구는 고3때 수능 당일 날 평소 자신의 실력보다 시험을 못 치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친구의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원을 권했으나

학생 본인이 '이왕하는 재수, 후회 없이 최선의 조건에서 재수를 하고 싶다'라고 주장해서

부모님은 학원비만 도와주기로 하고 차비, 식비, 교통비는 본인이 해결하면서 다니기로 했습니다.

일단 공부를 꽤 한다고 알려진 친구여서 재수생의 신분으로 동네 중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해서요.


이 친구는 평일에는 매일 수요일날 과외를 하기 때문에 자습을 못하고 조퇴를 해야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남아서 자습을 하는데 자기는 그날 저녁을 공부를 못하니까 뒤처지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지요.

그 친구 왈

"남아서 자습을 할 수 있는데, 공부가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땡땡이 치는 애들이 제일 부럽고 또 한심했어요."라고 하더군요.

여튼

이 친구는 자신이 자습을 할 수 있는 날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습을 하는 걸로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또 이 친구가 부러워한 학생들은, 아무런 부담없이 인강도 결제하고 교재도 사고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하는군요.

본인의 경우는 자신이 알바해서 번 돈으로 교통비 내고, 식대 내고, 학원 책값 내고 나면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은 별로 없었겠지요.

그래서 정말 심사숙고해서 책을 사고

한번 산 책은 정말 열심히 끝까지 다 봤다고 하더군요.

또 재수 종합반 수업 외에 추가적으로 단과 수업을 듣거나 인강을 듣기가 힘드니까

재수 종합반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정말 열심히 들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친구가 자신이 도움이 받은 국어 강사에 관해 말해 준 적이 있는데 정규반 수업과 논술 대체 수업,  그리고 방송 수업의 모든 강사들을 나열하더구요.

결국 이 친구는 전과목 모든 강사들에게 무엇이든 배워내고야 만 것이죠.

이 친구가 겪었던 또 하나의 핸디캡은 집이 무척 멀어서 많은 시간을 통학을 위해서 보내야 했다는 거지요.

이 친구와 집이 비슷하게 멀었던 다른 친구는 집에서 학원 앞에서 학사를 얻어주어서 등원 시간이 2분이었어요.  거의 매일 6시반부터 자습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친구는 종례 시가이 다 되어서야 허겁지겁 가기 일쑤이니 다른 친구에 비해서 자습 시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지요.

워낙 만원  지옥철을 이용해서 책을 꺼내 공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구요.

이 친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최대한 좋은 기분을 유지한다. 짜증내지 않느다.

그리고 일단 학원에 가서 앉으면 최선을 다해 수업을 듣고, 공부한다. 

였던 거지요. (본인 주장으로는 한 번도 수업 시간에 존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 낙천적이고 씩씩한 친구 (당시 3층 교무실에 '까르르~'하는 웃음 소리를 내면서 자주 출몰했었지요)에게 위기가 왔는데

9월 평가원 시험이 썩 좋지 않았죠.

눈물을 글썽이며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을 제가 옆눈질로 보면서 조용히~~ 지나 갔던 기억이 있네요.

(후에 말하기를 

부모님께 '딸 1년 재수도 마음껏 하게 도와주지 못하냐'고 모진 소리를 해서 재수를 하고 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니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발랄한 친구는 또 언제 그랬다는 듯이 발랄하게 공부하더군요.



그리고...

그해 수능 당일

아주 대박이 납니다~~

그리고 논술학원에 다닐 돈을 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죄송하다고~

2차로 논술을 보지 않고 면접만 보았던  모 대학의 경영학과를 싼 맛(?)에 갔지요.





이 친구가 그해 일년 동안 보여준 모습에서 

제가 배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뭔가 답답하고 일이 꼬일 때 

그 친구에게서 배운 교훈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다듬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이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을 열고 읽어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아~

수능 끝나고 만났을 때

"작년에 수능을 망친 것이나, 올해 운이 좋게 다 맞은 것 모두 자기 자신이 아니라 지나가는 풍경들 같은 것인데 남들은 그게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라고 했던 네 모습을 보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 그대로 
너 자신을 지키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길 항상 응원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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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 글의 주인공에게 보여주고 감수(?)와 승락을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기말 고사가 끝나면 본인이 직접 써보겠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덧글
저는 이 친구가 독재를 하거나 다른 학원에서 공부했더라도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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