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해서15학번 [344962] · MS 2010 · 쪽지

2015-01-29 03: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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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정신차린 케이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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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표났는데 예비 1번 받고 기분좋아서 글 씁니다.

저는 사춘기가 늦게 와서 고2 시작부터 공부랑 담쌓고 놀았던 학생입니다.
그 전까진 학원을 다닌 덕분에 수학만 진도를 빼놨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한번의 진도만을 뺐을 뿐이고 그나마도 대충대충 배운 것이라 고3 현역일 당시 수능을 치러 들어가는 제 머릿속에는 적통이랑 벡터라는 파트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탐구 3과목 볼 때였으니 450점 만점이었는데, 300 초반대 점수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탐구는 자를 대고 3번 쭉 밀었고, 시험 끝난뒤 가채점도 제대로 안했으니, 정확한 점수도 기억이 안나고 수능 성적표는 지금 어디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내가 지잡대를 가겠구나.'
고2, 고3을 공부를 한번도 해본적 없는 놈이 어렸을 때 부터 sky만 들어봤으니, 당연히 연고대는 갈 줄 알았던 겁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다는걸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대학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된겁니다.

친구들은 인서울 대학을 붙어 놓고 성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철없는 고등학생 마인드로, 한번도 진지한 노력을 해본적도 없는 채로 20살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허접한 대학 간판을 달고 살기엔 초등학교때부터 머리좋다는 소릴 듣던 제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아서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이왕 하는거, 목표는 서울대!라는 호기로운 마음가짐으로 화학2과목도 선택했습니다.

기숙학원 선행반에 등록을 하고 처음으로 하루 왼종일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엔 자리에 그렇게 오래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수면시간도 줄고, 화장실 갈 수 있는 시간도 줄고, 이것저것 힘든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내가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어거지로 버텼습니다.

남들은 한달마다 나가는 휴가도 다 반납했습니다. 5, 7월에 의무적으로 나가야 하는 휴가만 나오고 미친듯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점차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는 것을 볼때마다 성취감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고, 저는 어느새 공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6월 평가원에서는 모두 컷에 걸치긴 했지만, 올1등급도 맞아보고,  9월 대성모의에서는 5개밖에 틀리지 않아 대성빌보드에 오를 만큼 빠른 성장세로 저는 성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2014년도 수능은 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참했습니다. 물론 고3때 친 수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은 점수였지만, 결국 sky에 가기엔 모자랐던 점수였습니다.

후회는 없었습니다. 제 뜻으로 시작한 재수였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대학을 합격하든, 이것이 내 능력범위다 라고 생각하며 다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원서영역에서 터졌습니다. 본래 쓰려던 대학을 쓰지 못하고 더 낮은 대학을 쓰게 된 겁니다. 원서 접수 마감시간을 착각해서 시간 내에 접수를 하지 못해 생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본래 쓰려다 쓰지못한 곳은 그해 빵꾸가 나면서 저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1년동안 죽을둥 살둥 공부한 결과물을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접수 일자 이후 한두달동안 죽고싶은 괴로운 마음에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습니다. 함께 재수를 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본인들이 노력한 결과물을 들고 힘차게 새내기로 첫발을 디뎌나가는데, 집에서 다른 친구들의 합격소식을 듣고, 새내기 활동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쟤네들보다 더 잘했었는데... 더 열심히 했었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디가서 말하지도 못할 일이라 혼자서 속만 썩였던 2014년 봄이 저에겐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한참을 앓다가 다시 일어설 생각을 하게 된것은 3월 말이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무너져 있을 수 만은 없었기 때문에, 저는 다시한번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기숙학원에 다시 등록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울대를 포기하며 1+1과목으로 조합을 바꾸고, 남들보다 두달 늦게 시작한 것을 상기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학 간판이 부끄러워서 시작한 재수와는 달리,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어떤 직업을 갖는것이 나의 평생을 두고 고려할때 이상적인가. 결론은 의대였습니다. 의대를 가겠다는 열망이 최초로 싹텄습니다.

욕심이 생기면서 재수때와는 다르게, 스스로 찾아가며 더 배울것이 무엇인지, 내가 부족한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공부하는게 이런것임을 느꼈습니다. 의대를 꼭 가고싶었고, 의대를 가기 위해서는 작년보다도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태해질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목표의식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력의 결실인지는 모르겠으나, 3월 이후 10월까지 10번의 시험중 8번을 대성빌보드에 올랐습니다. 모의고사정도의 성적만 수능에서 낸다면 연의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작년처럼 수능 전 한달동안 자만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대한 기대감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대망의 2015수능은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난 지금 치는 시험 망해도 의대는 갈 수 있다.' '올해 본 모든 시험중에 제일 못본것도 의대는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긴장하지마라.' 끊임없이 자기암시하면서 시험에 임했습니다. 다행히도 쉬운 시험을 마주하게 되었고, 차분히 시험을 마무리 했습니다.



2년에 걸친 공부는, 하마터면 그저 그렇게 바닥을 기며 살게 될지도 몰랐던 제 인생을 다시금 정상궤도로 올려놓게 해주었습니다. 절대 지잡대에 가게 되어, '바닥을 기며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 19년의 삶에서 단 한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고, 또 미래를 위해 노력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닥을 기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제 자신의 가치를 키우는 일이었기에 지난 2년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쉽게 중단하고, 느긋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제가 흘린 수많은 눈물들은, 지금은 저를 웃음짓게 하는 한편의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제 동갑 친구들은 이제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더러는 군대에서 병장을 달고, 누구는 과고 조기졸업으로 대학 4학년에 올라갑니다.
이들에 비하면 제 출발은 좀 늦은 편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만족스러운 대학생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가 쌓여 언젠가는 그들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고등학교때 방황하다가 늦게 정신차리고 입시판에 뛰어드신 분들께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허접한 글이라 읽기 힘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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