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3-08-16 17: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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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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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회갑 인생을 살며 느낀 점은, 꽤 많지만 그 중 하나는 구태여 자랑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고쳐 쓰면 내가 구태여 자랑해야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면 차라리 자랑을 안 하는 게 낫다.

예를 들면, 어느 공학도가 MIT에 다닌다고 했을 때 그는 구태여 내가 꽤 괜찮은 대학을 다닌다고 자랑을 할 필요가 없다. 
이건 서울대에도, 연세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잠시 적을 두었던 ICU(한국정보통신대학)라는 대학이 있다. 지금은 카이스트에 편입됐지만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총장으로 3학기 3년 졸업,
등록금 전액 무료라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으로 출범한 대학이다. 당시 누군가 내게 이 대학이 한국방송통신대학이냐며 물었을 때 난 일반학사대학이라고 한 마디 하면 될 걸 10마디 대답으로 대신했다.

"한국정보통신대학이라고.. 지원자격 자체가 1등급이고 과학고에서 애들 많이 뽑고 카이스트랑 이제 곧 비슷해질 대학이야. 총장은 정통부 장관이고 모두 영어 수업에 해외 연수 무료로 보내주고 학생당 교수진 비율도 업계 최고이고 기숙사도 사실상 무료야. 입학 전부터 연수를 보내줘 어쩌고 저쩌고"

이 경우 문제는, 듣는 입장이 "와 대단하구나" 생각하기보다 나의 계속되는 늘어지는 말에 심심이를 붙잡고 싶어할 확률이 더 크다는 점이다.
살다 보면, 굳이 부연해야 성립되는 자랑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 또 하나 사례가 있는데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유혹에 빠지는 경우다. 바로 특정 학교 혹은 특정 전공에 수석, 차석입학했을 경우인데 난 정말 이 때 입이 근질근질했다. 어떻게든 이 말을 꺼낼 기회만 엿보다 포착될 때 꺼내곤 했는데 문제는 단순히 "수석했다" 정도로 대화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왜 다른 곳엔 안 쓰고 이 곳에 왔어?"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이 경우 열에 아홉은 "그냥 난 여기가 오고 싶었어"라는 말을 꺼냈던 것 같다. 애초 내가 말을 꺼내려던 동기가 날 부풀려 자랑하고 싶다는 허영에서 시작됐기에 끝맺음이 허영으로 끝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이런 나의 허영을 귀신같이 포착한다. 당시 나에게 "너 잘난척 하냐?"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절대 없었고 다들 놀라며 좋은 얘기를 해주었지만 무의식 속엔 나에 대한 인간에 대해 "수석" 이외에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뉴런 하나를 새겼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남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나이를 먹어 고시를 보고, 취업을 하다 보면 비슷한 사례가 또 생긴다. 고시의 경우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사법시험 1차는 전국 순위 안에 들었는데 2차 볼 때 그 전날 고열 때문에 드러누웠어. 집중을 못했어"
"행정고시 3차까지 갔는데 최악의 면접관이 우리 조에 왔더라고. 우리 전부 질문에 말려서 안 됐어"

하나같이 들어보면 실력은 되는데 여건이 안 돼서 안 됐다는 그럴 듯한 항변이지만, 문제는 화자의 의도와 달리 청자는 이런 저간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최종까지 갔는데 ~~해서 안 됐어"라는 말을 아마 취업준비생들은 귀가 닳도록 여러 사람에게 들었을 것이다. 합격을 하고 안 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최종까지 갔든 서류에서 안 됐든 안 된 건 안 된 거다. 오히려 자신이 그래도 최종까지 갔다는 조그마한 자랑을 통해 자기가치를 높이려다 사람만 우습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장자는 "입은 닫고 의지는 키우라"고 했다. 보여주면 되는 거다. 어느 자랑에 부연이 붙는 순간, 그건 자기자랑이 아니라 자기기만이 된다. 물론 인류사가 타인에 의한 인정 욕구에 추동되어온 인정 역사라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인정을 자신이 pr해서 받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도 아닐 뿐더러 폼도 안 난다.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인정받는 사람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더라. 

이상이. 작지만 깨닫게 된 소소한 파편이다.

Best Regards,

Snu R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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