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삼수생이 현재의 N수생에게 (고전수필)
게시글 주소: https://io.orbi.kr/00019200279
<2018>
헬로, 어제 오늘, 학생들을 위로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션티입니다.
아니, 이 글은, 영어 강사도 kiss ebs 저자도 아닌,
그저 8년 전, 절실했던 삼수를 끝마치고
여러분과 비슷한 심정을 느꼈던 사람으로서 올립니다.
제가 삼수였던 11수능 국어, 아니 그 당시 언어가
100점 체제 후 사실상 지금까지 최저 1등급 컷의 시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90, 이었지요.
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옛날 옛적에는 '국어 듣기'가 존재했었는데요,
청각 측정 시간이라고 일컫던 그 국어 듣기가,
해당 수능에서는 문제 하나가 평소와 달리 이상했습니다.
(소방 시설 관련 내용.. 아직도 기억남)
얼마나 멘붕이 왔을지 느낌이 오실까요?
나름 서울대를 목표로 했던 사람인데,
영어 듣기도 아니고 '국어 듣기'가 애매했던 느낌.
이 때부터 한 번 멘탈이 흔들리고,
다시 멘탈을 붙잡고 푸는데,
두더지...(역시 그 당시 파격적이었습니다.
어떠한 강사도, 기조도 문법을 강조하지 않았으니까요.
제발 수능에선, '아무것도 예상하지 마세요.')
채권....
그리고 그레고리를 푸는데 정말
서울대만이 목표였던 제 머릿속에서,
대학이 하나씩 내려갔습니다.
서울대 연고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
등의 땀줄기도 같이, 흘러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세번의 수능 중 처음으로,
언어를 시간이 부족해 뒤에 고전소설을 통째로 찍었지요.
그리고 그 쉬는 시간,
'정말 절실히, 내가 삼수까지, 삼수까지, 했는데.....'
다시 멘탈을 부여 잡고
'수학 영어는 무조건 100이다'라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마음 속에 1% 정도는 '하.. 이미 언어...아.....'의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그래서 영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리고 아직도 깨지지 않는 영어 1컷 90까지.
(14B는 AB 구분 없었을 시 91로 추정됩니다.)
요즘 친구들은 이 때의 문제를 기출로 편히 풀고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혹, '음..? 요즘에 비하면 쉬운데..?'
할지 모르겠지만,
이 때의 현장감은 느끼지 못하면
아무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현장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1컷 1점이 낮을수록, 현장에서의 그 여파는 10배 느낌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입시를 포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를 열심히 살아온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제 삼수 때의 등급컷을 경신하며,
그것도 89 88 같은 1, 2점이 아닌,
'역대급으로' 경신하는 국어를 경험한,
여러분이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수능에서는 제가 부담, 책임감이 너무나 커서,
아침부터 오르비를 비롯한 네이버 카페의
메인 커뮤니티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어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문제 몇 개 슥 보고
'국어 쉬웠다'라는 글들이 보이더군요.
'물리 법정 개꿀, 길긴 한데 눈풀 가능 한듯.'
...
.....
.........
..................
실제 수능이 다 끝나고 국어 실체가 공개된 후
정말 수능은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의 싸움이 아니구나.
'현장' 싸움이구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1컷이 92인 국어와 91인 국어는 현장에서 느낌이 다릅니다.
91인 국어와 90인 국어도 현장에서 그 차이는 1점이 아닙니다.
헌데 지금, 1컷이 80 중반 추정이라니.
정말 그 현장감은,
현장에서의 그 식은땀과, 등줄기에 흐르는 땀과,
1년 간의 내 노력이 머릿속을 스쳐가면서
'난 잘못된건가 지금?'
이라는 그 느낌이,
저는 가늠되지 않습니다.
그 압도감, 공포감........
지금 멘탈이 제정신이 아닌 게,
당연합니다.
힘든 게,
당연합니다.
역대 가장 멘탈을 크게 뒤흔들었던 수능을 치르셨어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다 치룬 자신을,
보듬어주세요. 리스펙, 해주세요.
그리고 그 옛날 누군가도 이렇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구나,
그럼에도, life goes on.
그렇게 공감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여
오르비에 2010년, 그리고 3년 전에 올렸던 제 삼수 수기를
다시 올립니다. 재탕하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매년 올리는 짓은 안 했고, 이번에는, 정말 제 삼수 상황과 비슷,
아니 더 무서운 수능이었는지라,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립니다.
당장 논술이 있으신 분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고,
이번에 어떻게든 대학을 가시려는 분들,
한 번 더 하시려는 분들,
보시고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을 쓴 시점은 크리스마스로,
예비 고3, 한번더를 하려는 분들을 위한 조언이 들어있으나,
지금 제가 하려는 말은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3년 전 오르비 글에서 복붙하니 띄어쓰기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
하나 하나 다 띄어쓰기를 정성스레 했답니다..ㅠ)
------------------------------------------------------------------------------------
<2010>
저보다 공부 잘하시고 대단한 분들은 많지만,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삼수생이지만,
그저 평범한 전교 100등 정도 학생에서 많이 올라왔고 그 과정을
솔직하게 쓴 글이기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 올립니다^~^
2010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제 미니홈피에 쓴 글이구요
정말 솔직하게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시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고1말, 고2 때 공부 틀을 잡은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번 마음을 제대로 먹었으면, 독기를 품고 해야 한다는 것.
이제 대학가니까...
지난 21년 좀 돌아봐야겠다.
반성하고, 20대를 누구보다 잘 보낼 수 있도록.
글로 한 번 정리하고 12월 31일에 부산 가면
더 의미 있게 여행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쓴다. 꽤나 진지하게..
특히 지난 4년은너무.. 달려만 온 거 같다.
뒤돌아볼 때가 되었다.
초딩 시절
딱히 기억나는 건 없다. 걍 적당히 애들과 어울리고 적당히 놀았다. 확실히 초딩 시절이 제일 좋았던 거 같다...
걍 순수하게 별 걱정 없이 놀기만 하던 시절. 저녁 5시~7시에 만화보고...
중딩 시절
중1.. 중딩을 시작하자마자, 정말 소중한 친구 패밀리가 생겼다.
그냥 중학교 3년 동안을 이 친구들하고만 놀았다.
농구하고, 탁구치고, 수영하고, 게임하고, 사슴벌레도 키우고 등등 완전 진짜 별 짓을 다 했다. 우리들만 아는 놀이'햄볼'도.
그러다 보니 다른 애들하고는 약간 벽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고....
중3 때는 반장이었는데 정말 애들과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 했던 게 참 아쉽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여자애들과 something도 있었는데 난 전혀 없었다.
합반이었는데도여자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여자애 하고 무슨 얘기를 하지? 전혀 공통 관심사가 없는데...' 이런 마인드.
그리고 여자친구 생기면 돈도 많이 들 거 같았고. 내가 딱히 빠진 애도 없었다... 그냥 '아 이쁘게 생겼네' 이랬었다. 성적은 가끔 50등 안에도 들었지만 거의 중2~중3 때 전교 100등 정도 했던 거 같다. 대전에서도 촌구석 중학교에서. 이게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중딩 때 얼른 정신차리고 공부를 해서 대전외고를 갔어야 하는데. 많이... 후회가 된다 친구들과 여러 추억을 만들면서도 '공부'라는 것을 곁들였다면후회 없는 중딩 생활 이었을 텐데.
중3 때 지어서 학교 시화전에 걸렸던 시가 있다.
드라마 속의 여행
영화 속의 여행
소설 속의 여행은
즐겨 떠나면서
정작, 내 인생으로의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 긴 여행의 끝이
새드엔딩이 될 것
같아서
일까.
드라마, 영화, 소설은 보면 주인공의 시작과 끝이 다 정해져 있다.
그 것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근데 내가 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노력하지 않는 건... 그 노력의 끝이 새드엔딩 일 거 같아서..
이런 생각으로 그 당시 이 시를 썼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와 닿는 시다.
고1시절
고1이 됐지만 공부는 안 한다. 여전히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100등 정도.. 모의고사는 언수외 3~5등급 정도. 반에서 많이 자는 애들 중 하나다. 수업시간이 왜 그렇게 졸린 지 모르겠다....
그냥 애들하고 적당히 농구도 하고 게임도 하고 지낸다.
여전히 여자하고는 거리가 멀다. 분반이기도 했고. 그러다가 1학기 합산 내신 성적표를 받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모든 과목 3~5등급으로 도배된 성적표. 우리 반 1등은 1~2등급으로 도배를 했다. 이 때 정신을 좀 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다가 충남대는 갈 수 있을까.. 나 뭐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2학기부터는 좀 자세를 바꾸고 내신 관리를 시작했다. 이 때 최대의 목표가'수업시간에 안 졸기'였다. 그래서 1학년 2학기는 내신 성적을 50등 안으로 올렸다.
그렇게 1학년을 끝내고...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고2시절
1학년 때 내신 성적을 올린 거로 탄력 받은 나는 고2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담임 쌤이 '거의 왕따처럼 공부해라'라고 한 말이 와 닿는다. 원래도 말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 나는 말을 엄청 줄인다. 말이라는 건 자꾸 해야 되는 건데...
이 때 말 줄인 게 재수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하얀색 A4용지에 적은 영어 단어를들고 다닌다....
계속되는 중간 기말 중간 기말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했다. 지금 볼의 여드름도 이 때 생긴 것 같다..
그 결과 2학기 때는 중간인가 기말인가 한번 전과목 내신 1등도 해본다. 이 때 정말 기뻤다...
'아 하니까 되는구나' 전교 100등에서 전교1등이라는 성취감은 정말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모의고사도 언수외 2등급으로 올렸다. 특히 외국어는 고1 때 5등급 이었던 걸 올렸다는 게 기뻤다.
고2 때도 반장이었는데, 애들을 잘 챙겨주지 못하고, 또 더 많이 친해질 수 있는 애들이 있었는데그러지 못했던 게 아쉽다..
그렇게 고2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날 무렵.... 진로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어디서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주워 듣는다.
고2~지금까지도 날 제일 신경 쓰이게 해온 그 곳..
농구, 수영, 축구, 탁구.... 모든 운동이 좋았다.
NBA, KBL, 프리미어 리그, 각 종목의 스타 선수가 좋았다.
결정적으로... 서울대를 가고 싶었다.
난 당장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삼는다. 고2 겨울방학에 대전에 있는 체대입시 학원은 다 돌아다녔다.
그 때 충격적이었던 건, 서울대 실기 턱걸이 만점이 19개인데 턱걸이를 한 개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몸은 꽤 좋았는데.... 체대입시를 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턱걸이를 할 때 쓰는 근육은 등 근육이기 때문에 푸시업이랑 쓰는 근육이 다르다. 그리고 서울대는 전공 실기를 필요로 하는걸 알게 된다.
딱히 전공으로 내세울게 없던 나는.... 서울로 전공실기를 배우러 갈 생각을 한다. 그렇게 고2 2학기 겨울방학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며,
집에 철봉도 설치해 턱걸이에 매달린다. 서울대 실기에서 제일 힘들고 오래 걸리는 실기이기에... 몸 관리를 위해 야자 끝나고 와서 달리기를 하고 턱걸이도 하고 복근 운동도 했다.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고2가 지나갔다. 꿈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했던 그 고2가.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 George Bernard Shaw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조지 버나드 쇼.
고3 시절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6월 평가원 431
9월 평가원 213 8541
09 수능 211 2115
이라는 성적 상승 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오고 많이 좌절도 하고 하죠. 하지만
자신을 믿으세요. 자신을 믿고 끝까지, 닥.공. 했을 때 '자신의' 최고 성적이 수능에서 나올 겁니다.
고3시절
공부에다가 운동도 해야 되는 나는 더 절박해지고, 강박관념이 심해졌다.
다른 애들은 공부만 해도 되는데 난 운동도 해야 하니까....
체대입시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는데도 많이 힘들었다. 엄마랑 많이 싸우고....
결국 아빠가 지원해주셔서 시작하게 됐다. 3월에 서울에 있는 체대입시 학원을 찾아갔다.
가서 전공을 '핸드볼'로 정했다.
그 당시나는 고2 겨울방학에 혼자 노력하여 벌써 턱걸이를 10개까지 올렸다.
그 뒤로 거의 뭐.... 미친듯한 삶이었다. 계속 되는 중간 기말에, 2주에 한번씩 서울로 올라가토, 일요일을 운동으로 보냈다. 결국 한 달에 4일을 공부를 못하고 버리는 셈이었다.
이런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기차 안에서도영어 단어를 보고 영어듣기를 했다. 이렇게 체대입시를 할 때 아버지가 정말 고생 하셨다..
물적으로도 그렇고 내 뒷바라지를 해주시느라... 너무 감사했다.
야자가 11시에 끝나면, 버스 타고 두,세 정거장 거리인 집을 일부러 달렸다.
가서 턱걸이를 하고 약간의 복근 운동을 하고공부를 했다. 아침에는 학교 가기 직전에 또 턱걸이를 하고 학교를 갔다.고2, 고3 때는 잠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운동을 병행하는데 안 피곤 할 수가 없겠지만나는 그것마저 싫었다.
실제로 자습 도중에 하도 잠이 안 깨고 조니까내 뺨을 진짜 최선을 다해 때렸던 기억도 난다.
또 여전히 말을 거의 안 해서 애들과 많이 친해지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4월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211 222가 나온다. 외국어 98점. 80대에서 머물다가 껑충 뛰어 올랐다.
6월 모의고사에서는 완전 발렸다. 언수외 431..... 언어 공부를 안해도 2등급이 나오길래 안심했는데,역시 평가원 시험은 달랐다.
이 때 정말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대로 계속 가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여름방학이 왔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 부천 할머니 댁에 머물면서 체대입시와 공부를 제대로 병행한다.
고2, 고3, 재수다 고독했던 거 같지만 이 때가 외로움의 최대였던 거 같다.
미친 듯이 공부와 운동만 했으니.....
부천청솔학원에서 내가 밥 먹으면서도 계속 영 단어 보니까 애들이 그만하라고까지 했다.
이 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했던 거 같다.
이 때는 전략적으로 사탐을 버리고 언수외만 공부했다.
여름에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고, 나도 좀 생각이 있어서 해군사관학교를 봤다.
난 보기 전만 해도 정말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쫄아서 육사, 공사가 아닌 해사를 지원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내 실력은 좋았던지
1차 250대를 맞고 가산점을 받았다.
그리고 2차에서 처음 보는 면접에 좀 더듬거리기도 했지만 괜찮게 보고,
푸시업과 윗몸일으키기는 2차 응시생 중 1등을 한다.
이 후로 나는 공사, 육사에서도 윗몸일으키기 2분에 100개라는 기록으로 그 해 윗몸일으키기 기록 1등을 했다.
그 뒤 9월 모의고사에서 213 8451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와버렸다.
여름방학 때 사탐을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난 절망하지 않고 사탐은 올릴 수 있다며 슬슬 운동을 줄이고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사탐 전략도 제대로 짰다. 괜히 국사를 공부하다가 등급이 2222가 나오는 거보다는, 국사를 버리고 1115가 나오는 게가 군에 서울대가 아닌 다른 학교를 쓰기에 좋다고 여겼기에, 국사를 버리고 사탐과 언수외에 집중했다.
졸리면 무조건 무릎을 꿇거나 일어섰고, 막판에 애들이 풀어질 때도 절대 풀어지지 않고 말 없이 공부했다.
머리 속에 수능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느낌으로 공부했다.
결과는....................
역시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09 수능
211 2115. 백분위 94 99 97 96 96 93 41. 연고대식 전국 상위 1.5%.
처음으로 모의고사문과 전교 1등.'체대입시'를 병행하고도 낸 결과였기에 더 의미가 컸다.
난 수능이 끝나고 1주일 뒤에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는 좀 말도 많이 하고 즐겁게 운동을 했어도 됐을 텐데...
무려 2년간 가둬놓았던 성격이 바로 돌아올 리 없었다. 뭔가 친해지는 방법을 잊어버린 기분...
그렇게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운동에 시달렸다.
철봉, 턱걸이에 손은 다 나가고 엄청나게 추운 날 나가서 뛰고 공 던지고..... 많이 힘들었다.
내가 다시는 체대입시를 안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크리스마스에도, 내가 20살이 되는 그 순간에도
운동을 했다. 20살이 되는 그 순간에는 농구 레이업을 제대로 못하고 욕을 많이 먹어서 울었던 기억도 난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1차를 통과하고. 결국 2차 논술 면접 실기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이번엔 노력에 따른 결과가 따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깝게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기가 끝난 다음날, 해군사관학교 입교식이었다..
난.... 가지 않았다. 내가 체대입시를 하느라 고생했는데 바로 또 어떤 고생을 하기는 싫었고,
그냥 담담히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체대입시를 하느라 제대로 원서질을 알아보지 않은 나는, 성대 경영 정도의 성적이었음에도 가군에 대충 배치표를 보고 고대 어문을 써버렸고, 광탈했다.
결국엔 2월에 다군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과만 붙게 되었다.
이 때 한 1주일간 폐인처럼 고민했다. 시립 경영을 갈 것인가 재수할 것인가............
목표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컸기에 난 재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2월 중순, 장학금으로 한 달에 200만원인 곳을 60만원만 내고 다닐 수 있는 기숙학원에 등록을 했고 09 입시는 끝나버렸다.
노력 끝의 절망을 남기고 또 새로운 희망을 품으면서.
재수생활 때 강조하고 싶은 건.......
규칙적인 생활의 결과 성공한다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그리고 정말... 원서질의 중요성입니다.
재수, 삼수분들.. 욕심 부리지 마세요.
정말 저는 우리나라 대학의 가나다군 원서에 할말이 많지만...
뭐 아무말 않겠습니다.
시험을 ‘정말’ 잘보면, 땡이거든요^~^
재수시절
경기도 이천시 탑클래스 기숙학원. 완전 시골이었다. 4층에 올라가서 보면 몇 km 떨어진 곳에 도시가 보인다.
처음엔 소똥냄새도 나는 곳이었다. 운동장 농구장 다 있고 완전 기숙학교였다. 4인 1실을 썼고 뭐 시설이나 밥은 좋았다.
재수 때도 거의 고3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공부했다. 말을 거의 안 했고,
서울대 체육교육과도 계속 마음에 담아 두었기에 가끔 농구도 하고, 철봉에서 철봉오르기와
턱걸이를 하기도 했다.
자습이 끝나고 와서 하는 복근 운동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 서울대 일반 문과를 목표로
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재수 때도..... 상당히 폐쇄적인 경향을 유지했다. 고3 때 그렇게 해서'나의 최고성적'이 나왔기에, 그걸 믿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런 폐쇄적인 경향 때문에, 좋은 친구들과 형누나들이 많았는데 많이 친해지지
못해서 아쉬웠다.
첫 3월 모의고사에서 언수외 222가 나와 절망하지만,
그 뒤로는 언어가 2~3, 국사는 3~4 나오는 거 빼곤
나머지 과목 전부 상위 1등급을 유지했다. 문제는 언어와 국사였다.
언어를 올리는데 정말로 고생했다. 언정보, 언어의기술, 기출문제를 계속 돌렸다.
그 결과 느낀 건.... 솔직히 머리도 필요한거 같고, 논리를 키우는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나같은 경우는 시간 부족도 아주 컸다. 한 문제에서 계속 고민하고 못 넘어가는 습관.....
6월 모의고사에서도 2111113이 나와서 언어 때문에 절망했다. 그렇게 8월까지 언어가
계속 2~3을 왔다갔다 했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며 계속 공부한 결과 9월 평가원에서 처음으로 98%가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수능까지 계속 1등급이 나왔다.
국사는 09 수능 5등급, 6월 평가원 3등급, 9월 평가원 2등급, 수능 1등급으로
꾸준히 올렸다.
여름엔 공사와 경찰대를 봤다. 공사는 역시 가산점을 받고 1차를 붙었고, 경찰대는 털렸다.
경찰대 수리는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공사는 2차에서 떨어지고 만다. 딱히 면접에서 잘못한게 없었는데도....
오히려 해사 때보다 면접을 잘했으면 잘했다. 개인적으로 해사 붙고 안 간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수능 한달전에 아랍어를 시작했다. 서울대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막판에 미친듯이 아랍어와 국사를 했다.
애들이 다 아랍인되려고? 할 정도까지... 하지만 아랍어 선택은 내 최고의 선택이었다.
최소 비용 최대 효과였으니까...
재수 때는 기숙학원 휴가 때 빼고는 정말 열심히 한 거 같다. 휴가 때면 집에서 한 3일간
폐인같이 있었다...
공부가 집에선 전혀 되지 않았다. 언제나 0.1%서현을 교재나 다이어리 모든곳에 썼고, 상상했다.
핸드폰은당연히정지했다. 고3 때는농구도접었지만재수때는일요일아침자유시간에 꾸준히 농구도했다.
공부+운동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고3 때 시험은 '막판이 가장 중요' 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막판에 역시 말없이 열심히했다.
이런 규칙적인 생활의 결과.... 성적은 사탐이 많이 아쉽지만 괜찮았다.
딱 노력의 결과였다.
10수능
111 1112 1 백분위 98 98 98 96 95 95 88 99
서울대식 0.5% 연고대식 0.7%. 언제나 8과목 1등급을 머리에 그리고 했는데 주력 과목이었던
근사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 때는 고3 때와 달리 원서질에 많은 고민을 했다. 거의 1달간 컴퓨터 앞에서 살았다.
수영, 헬스만하고....
서울대는 인문에는 조금 모자란 성적이고 사범대는 해볼만 했다.
다시 그 체대입시 고생을 하기 싫었고, 비용도 만만치 않음을 고려한 나는, 서울대 외국어교육계열에 지원을 했다. 1차는 안정일줄 알고 지원한 것이었다. 당연히 5등급에서 많이 성적을 올린 외국어에 애착이 갔고, 내가 뭘하든 영어는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가군엔 고대를 쓰려고 했는데 고대인문같은 중하위과는 안정이 고경영정경자유전공은
소신, 상향인 애매한 성적이었다.
결국 나는 욕심을 부려........ 고대 자유전공을 써버렸다.
어디서 그런 욕심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원서마감 직전까지도 고민하다가, '에이 내가 별로 관심없는 학문하느니...'라는 생각으로 써버렸다.
결과는고대자전광탈. 서울대외국어교육계열 1차광탈.
이 때 난 참 운도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고대경영이 0.8%에서 끊기고 정경자전이 나란히 0.6%로 입결 1등이 된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경영과 자전이 자리가 뒤바뀌어야 하거늘........
그리고 서울대경영 0.8%, 사과대 1.2%라는 대빵구가 나면서,
경영, 사과가 흡수해야할 최상위권이 다른과로 몰려 폭발하고 말았다.
원서질 3패. 자동삼수였다..........
그렇게 1월에 삼수가 기정사실이 되고, 나는 여행도 다니고 많은 생각을 하며
삼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30대란, 다시는 때려 죽여도 이렇게는 못산다고 말할수있는 20대의독기,
외로움과 노력들과 치열함으로 버텨낸 하루들이 모여서 가져다 주는 화려함이다.
치열하게 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치열하다.
각종 고민과 답없는 질문들로 돌다리만 두드리고있다. 20대의 치열함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와야한다.
몸이 고달프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20대의 대부분은 몸이 아닌 머릿속이 치열하다.
그것도 하나마나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유수연 [20대, 너만의 무대를 세워라 中]
저기서 30대를 성공적인 20살로 바꾸고, 20대를 고등학교때로 바꾸면,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삼수 때는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만족할만한
'결과'는 얻지 못 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얻을 것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이 하시기 바랍니다^~^
보시고 난 이러지 말아야지…하실 건 하시고, 나름 괜찮은 부분이 있으면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삼수시절
1월에 나는 거의 삼수가 확정 되었음을 알았다.
여러 생각을하며, 여행을 하며 보냈다.
하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기초 자금이라도 마련하려 알바를 알아봤다.
그래서 2월에는 밤샘 편의점 알바, 수영, 과외로 아주 바쁘게 보냈다.
편의점 알바하면서, 어이없이 쌍욕을 먹은 적도 있다.
이때 참 앞으로 이런 대접을 안 받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도 했었다.
밤샘 편의점은 좀 널널했기에, 텝스책을 가져와서 텝스책도 조금씩 봤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목표를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경찰대와 서울대경영으로 잡는다. 2월말에는 학원을 알아봤다.
원래는 당연히 기숙학원을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탑클래스는 장학제도가 바뀌어서,
더이상 적은 비용으로 다닐수가 없었다.
삽자루 기숙학원이 111111이면 전액장학이 되길래 딱이다 여겨 연락을 했으나,
이미 선착순이라 다 차고 말았다.
그래서 그냥 이름없는 기숙학원에 전액장학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던중.... 노량진 비타에듀를 알게 되었다.
수업료 전액장학이되었고, 기숙사도 싼값에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나는....
노량진 비타에듀 학원을'선택' 하였다.
2월의 빡센일정으로 체력이 부족하다고 여긴 나는, 3월 중반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그냥 개강일인 3월 2일에 노량진 비타에듀를 들어갔다.
삼수를 할때는 살짝 변화를 주었다.
재수때까지의 그 폐쇄적인 경향을 유지했다간, 미쳐버릴거 같았다.
또 1월에 내 다이어리에 다짐했었다. 대학을 가든 삼수를 하든 인간관계에 좀 신경을 써보자.
비록 삼수를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대학 가서,
더 나아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느 때와는 달리,
삼수 때는 룸메들이나 반아이들하고 꽤 친근하게 얘기도 하고 지냈다.
정작 룸메나 반아이들은 내가 별로 얘기 안 하고 공부만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재수때까지에 비하면 그게 얘기를 많이 한 거였다. 그 결과 아끼는 동생들이 많이 생겼고,
그래서인지 삼수 때의 생일은 풍족했다. 고3, 재수 때는 공부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그냥 아무일 없이 지나갔던 생일이었는데.... 21살이 다 끝나가는 지금, 생각해본다.
삼수때의 내 변화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11수능의 원인이었을까?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있다.
삼수때도 앞으로 보게 될 육사 2차와 경찰대 2차를 생각하며,
가끔 농구도 했고 몸관리도 했다.
여름에는 동생들과 함께 자습 끝나고 20분 정도 한강다리를 달렸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달리면서 여러 생각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했었다. 이러면서 많이 기분을 풀기도 했고.
재수 때는 0.1%서현이었지만, 이번엔 NO.1서현으로 책들을 도배했다.
공부는 우선 8월 경찰대 1차 통과에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외국어,수리,언어=사탐의 중요도 순으로 공부했다.
외국어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A4용지에 단어를 적고 다녔고
전자사전으로 동의어, 반의어 등을 jump 기능을 이용해
다 찾아서 다이어리에 적고 다녔다. 가끔 텝스 문제집도 풀었다.
그 결과 삼수 1년 중에 육사 외국어시험을 포함해서 100점을 대여섯번 정도 맞았다.
고1 때 모의고사 5등급이었던걸 생각하면 많은 발전이었다.
수리도 최대한 어려운 문제를 많이 생각하며,
문제집들을 풀어나갔다. 사탐은 국사에 초점을 맞추어 교과서를 꾸준히 읽었다.
그리고 윤리를 경제로 바꾸었다.
윤리를 시험으로 본다는 게 내가 싫기도 했고, mannerism에 빠질거 같아서 바꿨다.
그리고 경제를 평소에 하고 싶기도 했다.
언어는 1주일에 한번 기출문제를 푸는 것으로 만족했다.
3월에는 언수외 원점 268이 나와서 절망하지만, 4월에는 학원 1등을했고 5월에도 수외 100으로학원 1등을했다.
하지만.... 다 쉬웠다던 6월. 난 철저하게 발리고 말았다.
2211112. 정말 오랜만에 맞아봤던 수리 2등급. 그리고 다시 떨어진 언어.
외국어 100의 성취만 빼곤 정말 절망적이었다.
서울대경영, 경찰대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말 절망했지만...
경찰대 시험이 얼마 안 남았기에 7월에는 경찰대 기출문제를 돌렸다.
8월 1일 육사를 컷보다 30점 정도 높은 점수를 맞은 나는 자신감에 찼고,
더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8월 15일 경찰대 시험....
수리를 철저히 발렸다. 40점대.... 언어는 채점을 하지도 않았다.
그날과 그 다음날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내가정말가고싶었던곳이아니라곤하지만,
1차적 목표로 달려왔던 곳인데.... 하지만 난 얼른 정신을 차렸다.
절망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대 외국어를 86점 받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오르비에서도 경찰대 외국어 80점대는 정말 드물었기에, 자존감을 유지하며 다시 9월평가원을 향해 달렸다.
Success is the ability to go from failure to failure without losing your enthusiasm!!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를 책꽂이에 써놓았다.
그 당시 나는 구본석의 수기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生卽必死死卽必生(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산다)를 다이어리에 도배했고,
이대로 가다간'죽는다'는 심정으로 공부했다. 다시 말을 무섭게 줄였다.
2주만에 아랍어를 다시 다 돌렸다.
그 결과 9월 평가원은서울대경영에 근접한 점수가 나왔다.
난이도도 내가 딱 좋아하는 난이도로 나왔다. 언어 93컷에 난 96점으로 98%뜨는 난이도....
8월 이후로는 사탐이 원점 총합 198도 몇번 떴고, 10월 교육청도 490대라는 높은 원점수를 맞는다.
10월에도 난 막판의 중요성을 알기에 특별한 며칠을 빼곤 닥공했다. 10월에 육사 2차를 봤으나...
역시 난 떨어지고 말았다. 사관학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기분이었다.
해사를 최종합격하고 안 간 나를 좋게 볼리 없었다.
공부가 안 되는 날도 있었지만 최대한 참고 열공하며, 11월에 대전 내려가기 전에는 반아이들한테 빼빼로도 돌리고 대전을 내려왔다. 그 다음날에는 아파서 좀 많이 잤고,
집에서 수능때까지 5일 정도는 제대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역시 수능은............. 한방이다.
11 수능
111 1112 1. 백분위 96 97 99 98 98 98 91 97.
서울대식 0.4% 연고대식 0.9%.
또 8과목 1등급은 달성하지 못했다. 한번도 2등급이 나온적 없던
사문에서 2등급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사탐 1개의 빵구를 보면 시험에서의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재수 때 수능에서 사탐에 한이 맺혀서 사탐에 집중을 했더니
언수외가 많이 떨어졌다.
재수 때는 성대의 전액 장학 기준이 되었는데
이번엔 반액 기준밖에 안된다는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취약과목인 언어가 어렵게 나와버리는 바람에 처음에 말린 것도 한몫 한 것같다.
평소 시간 부족이 문제였어도 09, 10 수능에서는 다 풀기는 했었는데....
11 수능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찍는' 사태가 발생해버렸다..
그리고 너무 서울대만 바라보고 공부해서인지.....
서울대식은 올랐지만 연고대식은 많이 떨어져버렸다.
수능 채점을 하고.... 그날 많이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 겨우 이렇게 끝날 거였구나.....
다시 난 성공적인 원서질을 위해 인터넷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대는 또 사범대가 간당간당한 성적이었다.
1차를 통과하더라도 간신히 통과하고, 2차는 불안한... 그리고 분명 경영사과자전
셋 중 한곳의 빵구로 1차를 통과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2차에서 많이 밀리겠지만...
난 서울대를 너무 가고싶었다.
서울대식이 아닌 사탐2과목 반영한 점수는 너무 별로였기에, 서울대를 안 쓰면 의미가 없는 점수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외국어교육이나 사회교육 같은 일반사범대나 체교과에서 저울질을 했다.
11월말에... 다시 서울의 체대입시학원도 찾아가고, 체교과로 슬슬 기울기 시작했다.
2차까지 생각한다면.. 체교를 쓰는게 가능성이 가장 많았다. 고3 때 이미 해본곳이라 자신도 좀 있었고....
하지만 확정은 하지 못한채, 혼자 대전에서 수영과 헬스를 병행하며 가군 원서도 알아봤다.
나군에 서울대를 써야하기 때문에, 가군은 무조건 안정을 써야했다.
고대는 사범대가 간당간당한 성적이었다. 참.... 씁쓸했다
작년엔 고대 사범대는 하향 고대 인문은 안정인 성적이었는데.
하지만 서울대식이 올랐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성대 한양대 외대에서 완전 안정에 내 적성에도 맞는 곳을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12월을 보내면서..... 슬슬 가군 외대통번역 나군 서울대체교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운동+원서질 고민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12월 21일이었다. 아는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형 서울대썼어요?' '아니 22일까지아냐?' '마감된거 같은데...' ........................................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 머릿속이 패닉이 되어가며
서울대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원서접수 기간 17일~20일. 벌써 최종경쟁률이 떴다.
이 때의 기분은... 뭐 참 뭐라 표현할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랄까..... 서울대 입학처에 전화해서 정말 절실히 부탁했지만..
될리가 없었다.
분명 난 12월에 원서접수 기간을 확인했었다. 고대,연대,성대... 다 22일까지였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당연히 서울대도 22일까지로 입력이 되어있던 거였다.
무려 두번이나 서울대를 써봤음에도 불구하고.....
원서기간을 놓치는 어찌보면 인생최대의 실수 중 하나를 범하고 말았다.
원서접수 기간이 하루 남았다....
뭐 패닉이고 뭐고는 우선 이 현 상태에서 최대한 원서를 잘쓰고 느껴야했다.
처음에는 연고대 빵구를 스나이핑할까.... 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 접어버렸다.
혹시나 성공한다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대로 내 점수에 맞게 간 것도 아닐뿐더러...
서울대를 바라보고 삼수한 나에게 다른 대학의 서열따위는 무의미하다 생각했다.
다른 대학엔 별로 미련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무조건 4년 장학생, 공부 많이 시키는곳, 학교에서 밀어주는곳,
그리고 내 적성에도 맞는 곳을 알아봤다.
그 결과 한양대 정책학과와 외대 영어통번역학과를 썼다.
쓰고 나서 허탈하기도 했고, 가뿐하기도 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내 실수로 서울대 접수기간을 놓친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체육교육과는 다른 과와 엄연히 다르다.
핸드볼부에 들어서 일주일에 몇 번 의무적으로 운동도 해야 하고,
선후배사이도 많이 엄격하다. 난 술을 싫어하는 편인데, 술도 많이 먹어야 할거고....
가서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했지만,
그 과의 분위기라는것도 무시는 못 할 것이다.. 누가 어디 대학다녀요? 하면 서울대요...
이것에 순간 '으쓱' 할일도 있을거지만, 그게 전부 일수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것들을 생각하며 내'잠재의식'이란 놈이,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니면 이런식으로라도 생각을해야 내 심적 타격이 줄어들어서 하는 망상일수도있고.....
분명 설대체교는 좋은곳이다.
내가 고2 때부터 꿈꿔왔고, 여러 계획들도 세워 놓았다. 가서 영어는 무조건 열심히 하고,
서울대 스포츠마케팅동아리에 들어서 공모전 활동도 많이 하고, 경영을 복전하고,
체육활동도 열심히 하고....
난 아직 어리다. 과연 같은 노력을 했을 때,
어디를 가야 '잘풀릴지는' 모른다.
직접 가서, 경험하고, 뭔가를 이루었을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나의 선택과 상황이, 잘못된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11수능이 끝나고...
지금까지 가장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은 11 9월 학평외국어 최고난도 문제의 답선지이다.
Success divided by pretensions equals self-esteem.
정말.... 진리이다. 야망은 큰데,
이루어 놓은것 이 그것에 못 미칠수록 자기 존중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제............ 대학에 관한 Pretensions는 낮춰야겠다.
안 그러면 나의 Self-esteem이 너무 낮아져 삶이 암울할테니...
대신 삼수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 수능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Pretensions를 높이고 다시 달려나갈 것이다.
이번엔 꼭 Success/Pretensions가 1을 넘을 수 있도록.
추가 사진
외국어 5등급에서 올라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단어’입니다… 이 짓거리(?)를 고2 때부터 삼수 때까지 쭉 해왔습니다. 고2때, 한 학년 위에 괴물 같은 선배가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하는 걸 따라한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대 유물 취급 받은 저의 보물입니다.. ㅎㅎ A4용지를 16칸으로 나눈 것입니다. 1등급이 안 나오는 분들에게는 단어가 정말 필수적이며, 1등급이 꾸준히 나오더라도 조금씩이라도 봐주세요. 주변에 ‘맨날 1등급 혹은100점 나왔는데 수능에서 외국어 망했어 ㅠㅠ’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자만’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죠. 이건 비단 외국어 영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재수 시절 국사를 처음하면서 많은 국사 응시생들이 까다로워 하는 문화 부분을 영어단어와 같은 방식으로 다 적었습니다. 아랍어 단어도 이런 식으로 200~300개를 다 적었으나 어디로 사라졌네요 .. 고 3때까지는 영어단어가 언제나 주머니에 있었고요, 재수 때는 주로 국사, 아랍어. 삼수 때는 그때 그때 영단, 국사, 아랍어가 번갈아 가면서 주머니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정말.... 악필이죠 ㅎㅎ
--------------------------------------------------------------------------------------
<2018>
저도 사실 제 수기 부끄러워서 평소에 절대 읽지 않고,
이렇게 몇 년에 한 번 올릴 때 부끄러움을 참고 한 번 읽습니다.
읽고 나서 현재의 제가 그냥 몇 개 덧붙이면,
1. 이번에 대학을 어떻게든 가려는 분들은, 원서 안정은 무조건 쓰시길. 제발 ㅠㅠ.
2. 한 번 더,를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이 '급격한 변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신중히 생각하시길. 이번에도 아마 많이 느꼈을 겁니다. 그냥 열심히 해서 되기가 쉽지가 않아요.
제가 가끔 현강에서 하는 얘긴데, 정말 '압도적으로 바꾸고' 싶다면,
2월 초에 그 때 나온 모든 과목 개념서를 다 사들고, 머리를 밀고, 절을 들어갑니다.
그리고 오로지 책과 자신, 이 둘을 가지고 '환골탈태'를 하고 나오셔야 합니다.
그렇게 6개월 하고 완전히 바뀐 자신의 모습으로 실모 풀어제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압도적인 배경지식, 사고력 수준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또 그대로일 것이거든요.
저도 저렇게 해보지 못해서 쉽게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정말 저 정도의 각오가 아니면,
영어 절평인 상황에서 계속 국어가 불일 현 수능에서, 급격한 변화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3. 저 재수 때로 돌아가면, 삼수 안 할 것 같습니다. 20대를 살고 느낀 점은,
'어떤 시험에 대해 나름 최선을 다해 두번을 하면, 그게 거의 최고치입니다.'
여기서 또 뭔가 점수 상승을 원한다면, 2번 정도의 각오를 해야 합니다.
4. 저 삼수 끝나고로 돌아가면, 고대 사범대 가장 낮은 과 쓸 것 같습니다.
5.
30대란, 다시는 때려 죽여도 이렇게는 못산다고 말할수있는 20대의 독기,
외로움과 노력들과 치열함으로 버텨낸 하루들이 모여서 가져다 주는 화려함이다.
치열하게 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치열하다.
각종 고민과 답없는 질문들로 돌다리만 두드리고있다. 20대의 치열함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와야한다.
몸이 고달프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20대의 대부분은 몸이 아닌 머릿속이 치열하다.
그것도 하나마나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유수연 [20대, 너만의 무대를 세워라 中]
이 글을 21살에 썼는데, 이제 저 글대로 30대가 됩니다.
저보고 다시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갈래?? 하면...
안 돌아갑니다.
제 딴에는 할수 있는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 욕심이 과해 화를 보기도 했고요.
이제 멋진 30대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6. 저에게 서울대 원서 접수 기간 알려준 재수학원 동생은, 서성한 경영을 가서 올해 CPA 최종합격 했습니다 ㅎㅎ
다 마무리 하고 행복하게 놀러다니고 데이트하고 살고 있네요.
7. 아시겠지만 갈수록, 대학과 공부의 가치는 조금씩이라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지를, 가능성을, 더 더 많이 넓혀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여기 혹시 0
영화연출학과 재학 혹은 지망하시는 분도 계시는가요?? 혹시 있으시다면 몇가지...
정말 좋은글.... 특히 컷1점 떨어질때마다 현장감의 긴장도는 10배.... 이 부분이 제일 가슴에 와닿네요~
지수함수 스케일이 뭔지 몸소 느껴버림
진짜 17 18 19수능을 겪으면서 작년이랑 올해랑 현장감 차이 너무 심해서... 흑흑
위로..
15,16때 션티 수기랑 ebs 보고 많은 도움 받았는데 이제는 연예인이시네요 ㅎㅎ 지금 봐도 저 수기는 감명깊네요.
아직은 정말.. 그냥 자료 만드는 사람이지요 ㅎㅎ 고맙습니다!
친구가쌤수업들었었는데비록전듣지않았지만글잘읽고가요ㅠㅠㅜㅜ감사합니다
친구 궁금..! 고맙습니다
채권 그레고리 두더지......가
한 시험에?ㄷㄷㄷㄷㄷ.........
아 선생님 어제 문제 풀다가
in essence라는 구절 있었는데
그거 보고 번뜩 쌤 생각을......
평가원이 우리의 비밀인
에센스를 알고 있나봐요...ㅋㅋ
ㅋㅋㅋ 알아도 내년에도 거를 수 없도록 철저히..!
그나저나 선생님이
정말 많은 친구들에게
1등급을 선물하신듯.
존경합니다 정말로-
제주도 꼭 다녀오시기를 :)
담주에 가는거 어케알았지!? 얘기했나요 제가 ㅋㅋㅋ
‘제주도나 갈까해요’
라고만 얘기하셨는데
담주에 가세요??!!!
성과 제대로 내셨으니
정말 맘편히 몸편히 힐링하시기를!
과외강사로서 자극 많이 받았습니다. 매일매일 짧막한 독해글도 좋았고요. 누구나 사연이 있는거지만 고생하셨네요 ㅎㅎ
정말 누구나 사연이 있다, 는 말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실은 자신이, 가장 힘듭니다 ㅜ
그리고 그 노력으로 영어 올린 우리 뒹굴!
며느리 미나 ㅎㅎ 아형보고 알았네요 고맙습니다
헷 저 올해 갔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인제대하고 카이스트 붙었는데 합격하면 1년 더 할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어요 하핳
올해 꼭 가요 좋은 소식 들려줘요 덕배찡 :)
올해 삼수였습니다.글 읽으면서 시험장에서의 느낌이 저랑 비슷해서 읽으면서 눈물이 날라 했네요.살면서 처음으로 시험문제를 몇문제 찍고 국어 끝나고 쉬는시간에 고개 숙이고 눈 감고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 밖에 복도에서 어떤 친구가 국어 '너무 쉬웠다' 하면서 가는 걸 듣고 애써 귀를 막고 다시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 제 몸은 벌벌 떨리고 있더군요.주변엔 핸드폰,친구,가족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저 혼자만 있었습니다. 쉬는시간동안 정신을 추스리려고 했지만 시간은 매정하게 흘러가더군요.그렇게 수학시간이 야속하게 시작되고 한 쪽 머리에선 '이미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쪽은 '끝까지..끝까지..'라며 허벅지 꼬집으면서 꾸역꾸역 풀었습니다.그렇게 지옥같은 100분이 지나고 밥을 최대한 빨리 먹고 영어 지문 공부하려 하는데 머리에 안들어오더군요..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추스리려 하는데 저는 이미 위축되었고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가만히 생각하니 그동안 저 스스로를 너무 구박하며 살았더군요.모두가 날 불신해도 나는 날 믿었어야 하는데..그렇게 저는 힘겹게 영어,탐구를 보고 나왔습니다.결과적으론 조금만 정신 차렸으면 실수도 안하고 괜찮은 결과 낼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네요..가족들은 그냥 현역 때 갔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지금도 근심에 싸이신
부모님 얼굴을 잘 못보겠어요ㅎㅎ..그래도 이제는 입시에 미련두지 않으려 합니다.푸념할 곳도 없어서 댓글을 쓰는데 너무 길어졌네요.죄송해요..그리고 여담이지만 선생님 덕분에 그래도 영어 절망 속에서 조금이나마 빛을 봤던 것 같아요.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이런 친구를 위해서 올렸습니다.. 그 두렵고 떨리는 혼자만 느끼는 기분 정말 혼자만 느낀 건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고 오롯이 견디며 시험 마무리한 그 인내 또한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정말 고생했어요. 우리 이제는 또 다른 멋진 길의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진짜 제 롤모델 Shean T..!!
2018년 21살의 제가 2010년의 21살의 션쌤을 봅니다!
롤모델 벅..찹니다 ㅎㅎ 이미 저보다 더 멋진 일과 생각을 하고 계세요 :)
선생님 다음주 중에 한 번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다음달에 군대갑니다
아니.. 빠른 결정이군요. 네 한 번 잡아봅시다 제가 내일 쪽지로 폰 번호 알려줄게요 거기로 연락주어요 ㅎㅎ
정독했네요 영화같았어요...좋은글 읽고 갑니다. 내년에 또 하게 된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기꺼이 또 내주신다면 저도 키스코인 탑승할거에요 반드시ㅠㅠ
고맙습니다 ㅎㅎ
선생님 찾아가면 뽀뽀 가능한가요?? 전 남자입니다 너무 감사해서요
ㅋㅋㅋㅋ 뜨거운 포옹합시다 ^^
다읽고나니 허탈하고 너무안타깝고 그때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네요ㅜ제가 선생님 만큼의 노력을 하진 않았겠지만 계속 아쉽게 떨어져 그 비슷한상황에 공감이 되어서 더 슬퍼요 ..뭐라 더 쓰고싶지만 말을 아낍니다.....에휴 어떻게하나 수능날 잘보는게 장땡인거같아요ㅠㅠ 존경스럽습니다. 정말루요
아닙니다 누구의 노력이 더 하고 덜 하고 이런 건 없어요. 다 본인이 한만큼 노력했고 그에 대한 결과가 아쉬운건 본인이기에 본인이 가장 힘듭니다. 다시, 살아가봅시다!
존경합니다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부끄러워지네요 ㅠㅜ
지나가던 동생인데... 정말 멋지십니다..
하시는 일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잘 되어보려고요!!
감동적입니다.
Success divided by pretensions equals self-esteem.
이 문장 기억나네요... 몇 년이 지나고 영어 안 본지 오랜데도.ㅋㅋㅋ
저도 유일하게 박혀서 기억하고 있는 기출 선지네요 ㅎㅎ 당시 시험 보셨다니 반갑습니다!
압도적으로 바꾸는게 얼마나힘든지 가늠이안가네요..
정말 정말 굳은 결심,과 이를 이어나갈 의지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냥 울었어요 올해 인생걸고 본사람 말고도 이렇게 잘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파이널 구매했는데요 정말 도움돼서 시간 안부족하게 95 나올 수 있었어요
심지어 점심시간에 본 수능32번이랑 빈칸내용까지 완전히똑같은문제 덕에 그냥 3초컷했네요 소름돋은...
평가원은 10명 이상이 문제를 낼텐데 그 기관껄 혼자 다분석해서 어떻게 이렇게나 분신처럼 만드시는지 실력과 노력에 존경을 표합니다
진찌 열정적인 삶을 사셨군요 존경합니다!
감동이에요
선생님 다시 보고 갑니다.
헐..선생님 저도 서울대는 너무가고싶은데 고2때공부를시작해서 서울대 경영은 제가 수능잘쳐서 갈자신이없고 운동도좋아하는편이라 서울대체대를목표로 들어가서 복전생각하고있어요!!! 올해 다시 삼수로 도전하고있는데 작년재수때 9평까지만해도 국수탐 합쳐서 5개틀렸었는데 수능때 국어를 밀려써서..다시도전하게됩니다..!!! 저에게는 정말 큰힘이된글인거같네요 스크랩해서 힘들때마다 보러올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못이룬 꿈을 이루시길!
윗댓들 날짜를 보아하니 제가 꽤 많이 뒷북인 것 같네요 ㅋㅋㅋ. 그래도 선생님이 설체교 지망하셨다니.. 굉장히 의외네요. 저는 쌤 커리 타면서도 이제 안 사실...
작년에 저도 설체교 지망했었습니다. 수능도 어느 정도 봤고 실기만 남았었는데 바보같이 자만하고 놀다가 다쳐버려서 실기 시작조차 못했죠. 그래서 지금 반강제 반수 중입니다만.. 오늘 쌤 글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네요. 인생을 걸었다면 자만할 수 없는 것인데.. 제가 너무 근거없이 낙관적으로 살았다는 걸 느낍니다. 적어도 제가 작년 입시를 하는 동안은, 이 글에 담긴 선생님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제가 이 글에서 느낀 감정은 경외감이었지만, 올해 수능이 끝나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느낄 감정은 공감이길 바랍니다. 적어도 제가 이번 시험엔 최선을 다했다는 지표일테니까요. 그러한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는 달리 꼭 성공하시길 바라며..
건승을 빕니다.
예전 글 봐주어 고맙습니다!
키스타트 수업 들으면서 보러왔어요..쌤 짱이에요
고전수필에..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