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장문) 정시러가 되기로 결심했다.txt
게시글 주소: https://io.orbi.kr/00015228583
교무실 안 생김새는, 컴퓨터가 설치된 넓은 칸막이 책상 곳곳에 각 반 담임들이 앉아 있고, 학생은 앞문으로 들어와 뒷문으로 빠지게 돼 있다. 건너편은 학년부장의 자리, 담임이 그 맞은편에 앉아 있다. 담임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담임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앉으렴."
학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저번에 말한 전형은 생각해 봤어?"
"정시."
옆반 담임이 힐끗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담임이 갑자기 한숨을 쉬며 허리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시로 간다고 해도, 내신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대학이 대부분이야."
"정시."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렴. 수시 6장이 아깝지 않니?"
"정시."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입을 연다.
"우리 학교같은 일반고에서는 수시로 가는게 정시보다 훨씬 유리하고 편리한 전형이야. 내가 맡고 있는 반 아이들만 해도 벌써 반 1등,2등, 3등이 모두 수시를 썼단다. 네가 수시를 쓰게 되면, 너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대학 합격을 보장받을 것이며, 최저만 맞추면 당당히 대학 신입생이 될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대학의 초목도 너의 입학을 반길 거야."
"정시."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담임이 다시 입을 연다.
"너의 심정도 잘 알겠어. 오랜 학교 생활에서, 항상 성실히 수업에 참여해 온 너의 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 성적치고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2점대의 내신을 받은 너의 처참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단다. 나는 너의 내신 등급을 탓하기보다도, 너의 성실한 학교 생활을 기록한 생활기록부를 더 높이 평가해. 내가 권유하는 수시 전형으로 인한 일체의 불이익은 없을 것을 약속할게. 너는..."
"정시."
옆에 앉은 옆반 담임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학생은 말없이 창가 쪽으로 다가가 하늘을 본다.
담임은 말없이 학생상담자료카드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학생의 카드를 꺼내본다. 그 카드에는 학생의 장래 희망과 목표 대학이 적혀 있다.
담임이 천천히 창가에 서 있는 그 학생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너는 목표로 하는 대학이 어디니?"
"......"
"음, 서울대학교군."
담임은, 자리에서 정시 배치표와 과거 선배들의 진학 결과를 모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2점대라면 어중간한 내신이야. 물론 내신 1등급을 따기 쉬운 과목이 어디 있겠니? 정시올인을 해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이야기지만, 재수를 해 봐야 내신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네가 모의고사에서 전과목 평균 1등급과 2등급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건 알아. 수시로 70%가량이나 뽑고 정시로 고작 30% 밖에 뽑지 않아 내신보다 모의고사가 잘 나오는 많은 학생들이 억울함을 겪는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모순을 누가 부인..."
"정시."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니야. 다만 우리 반 내 소중한 제자가 재수... 아니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나서니, 담임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니? 재수를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생각해 보렴... 푸른 20대의 청춘이 무려 1년 더 소모되고, 힘든 일과를 보내며 열심히 공부해도 1년동안 더 투자한 시간의 가치는 잔인하게도 오로지 수능 성적 하나만으로 평가되고.. 나이가 들어봐야 20대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잖니? 성실한 너를 아끼는 너의 담임으로서, 난 네가 20대의 1년을 대학 진학에 더 쏟기보다는, 올해 대학에 진학하여 너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좋겠구나. 차라리 올해 대학을 진학하고 반수를 준비하는 건 어떻겠니? 눈을 조금만 낮.. 아니 넓게 보자. 너가 쓸 수 있는 다른 수시 전형이.."
"정시."
"너는 제일 모의고사를 잘 봤을 땐 평균 1.2등급이었지만, 제일 시험을 못 봤을 때는 평균 2등급 가량까지 떨어져 봤던 아이야. 마킹 실수를 했었는지, 긴장을 너무 많이 했었는지, 컨디션이 안 좋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정한 현실은 성적표에 찍힌 숫자만을 보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문과에서 정시로 평균 2등급이면 서울시립대도 못 가는 성적이라구. 그런 네가 모의고사와는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수능 시험장에서 단번에 서울대학교에 척하고 붙을 성적이 그리 쉽게 나올 것 같아?"
"정시."
"제발 현실 좀 직시하렴. 우리 학교는 일반고지만, 학교 밖에는 너 말고도 특목고, 자사고, 외고, 반수생, n수생들이 정시로 서울대를 노리고 있단다. 일반고에서도 1점대 내신을 받지 못한 네가, 그 사람들을 상대로 그리 쉽게 서울대 합격을 쟁취할 수 있을 것 같니? 내가 가진 통계에 의하면, 우리 학교에서 지금까지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던 학생은 10명 중 9명꼴로 모두 수시로 진학했단다. 나머지 1명은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거의 올1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엘리트였단다. 게다가 요즘처럼 수능이 쉽게 나오는 기조로 가는 추세인 경우에는 정시에서 한 문제를 틀릴 경우, 그 타격이 얼마나 쓰리고 아플지 짐작이 가니? 그 한 문제 차이로 전국에 있는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게 정시야. 너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다 수능 때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 학교 선배들의 수능 성적을 보면, 오히려 모의고사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다수이고, 오르는 경우가 소수란다. 수능 때의 긴장감도 이유지만, 그보다도 학교 밖에 있는 실력파 수험생들이 다수 유입되기 때문이지. 나는 이 교무실에 고3인 너희들의 원활한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있는 거란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대학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정시."
"모의고사가 잘 나올수록 수시에 불만이 많은 법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애써 3년동안 만든 자기의 내신 성적을 없애버리겠니?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이야. 올해 안에 대학에 못 간다면 재수..? 재수하면 된다고? 우리 학교 졸업한 선배들이 가끔씩 교무실에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항상 속상함을 털어 놓고 간단다. 재수하면 성적이 금방 오를 줄 알았더니 막상 그런 것도 아니라고 말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아이들은 고3 때 공부를 못 했던 아이들이 아니야. 학교에서 전교권에 들었던 아이들이 대다수란다. 성적이 오른다고 쳐도, 문과 정시가 얼마나 실수 하나를 용납 안 하는 잔인한 시험인지는 너도 이미 모의고사를 통해 느끼지 않았니? 무엇보다도, 모의고사와 수능은 다르단다. 작년같은 경우에도 9월 모평 때 국어b 가 1컷이 100일 정도로 쉽게 나왔는데 수능 때 평가원이 국어b에서 엿을 날려서 많은 수험생이 피본 걸 너도 알잖니? 그 많은 수험생들이 올해 정시에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 게 뻔한데 네가 그 소리없는 전쟁에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뛰어들겠다고..? 지금껏 학생들의 진학 실적을 보아온 너의 담임으로서, 나는 너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극구 말리고 싶구나. 부디..."
"정시."
담임은 연민에 찬 눈초리로 학생을 바라보며 말한다.
"서울대에 가려면 한국사와 제2외국어를 응시해야 해.. 자료를 보니 너는 한국사 내신 성적도 1등급이고, 교육청 모의고사 때도 항상 1등급을 받아 왔구나. 그래서 그런지, 너는 더욱 열심히 하면 수능 때 한국사 1등급을 받는 것이 무난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능 한국사에 응시하는 집단은 우리 학교 전교생과, 그리고 고3들끼리만 보는 모의고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지엽적인 문제에 예상 등급컷보다 높은 등급컷을 자랑하는 게 수능 때 한국사야. 그리고 너처럼 서울대를 노리는 사람이 다수 응시하기에, 표점도 짜서 만약 수능 후 서울대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사탐 표점에서 큰 손해를 안고 가게 된단다. 한국사는 그렇다 쳐도, 제2외국어는 어떻게 할 거니? 네가 지금부터 제2외국어에 힘을 쏟으면 다른 과목에 소홀해질 우려도 있을 뿐더러, 높은 등급컷에 네가 받을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거야.. 등급컷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면 아랍어에 응시하면 되겠지만 안 그래도 가시밭을 걷는 것같은 정시 준비에 도박을 더 걸어서야 되겠니?"
"정시."
담임은,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어느새 자리에 와서 상담 내용을 들은 학년부장을 돌아본다.
학년부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담임의 책상 위에 놓인 생활기록부에 이름을 적고 문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최인훈,『정시』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6메디컬로 갈지 5메디컬 1고대 학추로 갈지 고민 무한번째 하는중인데 뭐가 맞을지...
-
피램 뭐사야됨? 0
3등급따리면 생각의발단, 생각의전개 중에 뭐해야됨?
-
플립4때 써보고 안 쓴다고 그래놓고 왜 이러냐
-
기숙학원에서 재수 중이고 메가패스 보유 이투스계열 기숙와서 이투스패스도 보유 근데...
-
중대 입결 0
이번에 사탐 돌렸고 중대가 목표인데 정시 평균 등급이 어떻게 나와야 하나요?
-
하아
-
화학 1
이번년도에 고석용 cnr하고 내년애 김준 크포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성패스가 없어서 ..
-
논술은 한번도 공부를 해본적이없어서 어떤거부터 해야될지 감이 안잡히네요. 아마...
-
택포 2.5
-
와 방금 개빡집중해서 영어 리스닝 제외 40분내로 들어옴 4
미쳤다 50분 재고 할려다가 기침 소리때매 딴생각 10분 조지다가 시발 좃됏다하고...
-
분위기상 이런말 하긴 미안한데 난 훌리건 지지자쪽임 0
너도 지지자는 쪽이냐?
-
ㄹㅇ
-
설맞이 다 풀고 처음부터 쭈욱 보는데 문제가 기억이 안남.. 맞았던 것들도 풀이과정...
-
운동을 해야겠구나 난 체력이 쓰레기구나... 사실 늦잠자서 이러는거임 오늘 일찍잔다ㄹㅇㄹㅇㄹㅇ
-
이거 현 교육과정에서 빠진거 아님? 학교수업때나 시발점 같은데서 단한번도 들어본적도...
-
이거 두곳 다 가고 다 붙으면 가고싶은데 가도 되는거지? 막 상도덕에 어긋나고 그런거 아니지?
-
Pyeongchang 피빼면 영창ㅋ
-
현재 영어 5에서 4정도 나오는 사람입니다. 듣기는 3개 정도 틀리는 실력이라 계속...
-
바로 못사는 애들 되는거임? 열등감 있는 이미지 씌워지는거 무섭네 진지하게 학군지가 더 심하지않음?
-
단과 드랍.. 0
기숙 들어가서 대인라 다 드랍한다.. 아쉽당
-
N제 추천받아요 2
수2 4규 시즌1 끝나가는데 그 다음으로 뭘 푸는게 좋을까요?
-
구글에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링크 있으신분있으실까요 ㅠ
-
서울부심 나도 있었고 나 역시 지방으로 전학 가기 전까지 그런 걱정 많이 해봤는데...
-
전철타고 가면댄다 이런말 ㄴㄴ...
-
4회 21 42 틀 94점 오우… 존나매운데 반대로 빈칸은 ㄹㅇ 맛있음 문장간 유기적 연결 ㅁㅊㄷ
-
중학생 때 놀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막 시작한거라 1-1:3.8 1-2:3.2...
-
풀모의고사 10회에 22,000원 회당 2200원임. 가성비 레전드인데 다들 구매 ㄱㄱ
-
맡긴지 1주일됐는데 출발도 안했다함 편의점 사장도 나몰라라에 고객센터는 전화도...
-
아오 기자 시치
-
그냥 물로만 머리 씻고 가잖아요? 그러면 미용사가 머리 자르고 머리 감겨 줄 때...
-
ㅋㅋㅋㅋㅋ
-
사회 구성원간 상호 작용을 통한 일탈 행동의 발생에 관심 2
낙인, 타교 둘다 되나요
-
풀어보신분 후기점
-
역시나만그런청춘라잎없는거엿어 옯붕이들다친구많은인싸기만자엿어 대학라잎도없네난 자!살하러감
-
올해 첨하는건가요 혹시 작년에 응시하신 분들은 후기좀 직접 현장가서 치는게 유의미할까요
-
수능 영어듣기때 문제될 일은 없겠죠..?
-
메가스터디랑 메타인? 여기 두곳 중에 고민 중인데 어디가 더 좋을 까요... 광고...
-
중3에 강사한다고 생각하니까 어나더긴 하네ㅋㅋ
-
2등 마약동아리는 이름이 머고
-
폭☆사☆ 6
모모톡도 스킵하면서 다 털었는데 계속 중복만 나옴...드히나야....미안.....
-
돈 날렸는데 12
10년생 연대생까지보니 슬프구나.. 이것이 인생
-
재미있는 수열문재 한번 풀어보시오!
-
과외 관련 0
중1학생이 통합과학 과외 해달라고 문의왔는데 교육과정 바뀌지않나요? 이런 경우에는...
-
다들 착하네 0
중2때 가출 때렸었는데ㅎㅎ;
-
기파급 미적분 샀는데 모든 책들 pdf 용량이 9kb로 고정되어 있고 제대로 열리질 않네요 엄..
-
상태창 4
로그아웃 로그아웃 제발 로그아웃
-
9모 생명 신청했는데, 사문으로 갈아타서 당일 날 사문 볼 껀데 ,, 그럼 걍 가서...
-
내가 저나이땐 흙파먹고 댕겼는데ㅠㅠ
-
제목어그로 죄송합니다. 서울대 도서관 일반회원 가입 시 입금을 해야만 열람실 이용이...
이 분 글 개잘쓰네 ㅋㅋㅋㅋ
아 님아 전문가 시리즈 또 써주세용 ㅋㅋ
광장이었넼ㅋㅋㅋㅋ
서울대 한국사 사탐 시절 ㅌㅋㅋㅌㅋ
광장ㅋㅋㅋㅋ엌ㅋㅋㅋㅋ
ㅋㅋㅋㅋㅋ필력